전통문화는 흔히 보존의 언어로만 이야기된다. 오래된 것을 지키고, 사라져 가는 것을 붙드는 일로 먼저 이해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전통이 정말 살아남으려면 단지 보호의 대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늘의 삶 속으로 들어와야 하고, 사람들의 취향과 소비, 공감과 참여 속에서 다시 움직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전통문화재단 아름지기가 여는 기금 마련 바자는 단순한 자선 행사를 넘어, 전통문화를 오늘의 방식으로 이어 가는 하나의 문화적 실험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물건을 사고, 누군가는 기부하고, 누군가는 현장을 즐기지만, 그 모든 참여가 결국 전통문화의 내일을 위한 자원이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름지기는 4월 30일 서울 강남구 더 라움 2층에서 ‘제14회 아름지기 기금 마련 바자’를 개최한다. 2010년 시작된 이 바자는 올해로 14회를 맞는 재단의 대표 자선 행사로,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오늘의 삶과 미래세대로 잇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행사를 통해 조성된 수익금은 전액 전통 의·식·주 문화 사업에 사용될 예정이다.
이번 바자의 슬로건은 ‘Heritage Tomorrow! 함께 좋은 것을 이어가요’이다. 이 문장은 이번 행사의 방향을 비교적 정확하게 보여준다. 전통은 어제의 유산이지만, 그것이 내일로 이어지려면 결국 오늘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전통문화 계승은 거창한 구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관심, 누군가의 선택, 누군가의 소비와 후원이 실제 자원이 되어야 비로소 지속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바자는 전통을 감상하는 자리가 아니라, 전통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마련하는 참여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행사에는 각계 인사들의 참여가 눈에 띈다. 기안84, 김태우, 미야오 가원, 박주미, 산다라박, 소유진, 싸이, 이민정, 이제훈, 윤승아, 전혜빈, 주지훈, 프로골퍼 박성현 등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이 애장품 기부로 뜻을 보탠다.
이는 단순히 화제를 모으기 위한 장치로만 볼 일은 아니다. 전통문화 후원이라는 다소 무겁게 들릴 수 있는 주제를 더 많은 사람에게 친근하게 열어 주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애장품을 본다는 흥미와 전통문화 후원이라는 의미가 한 자리에 놓일 때, 공익은 조금 더 생활 가까운 경험으로 다가갈 수 있다.
셰프들의 참여도 이번 행사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출연 셰프들을 비롯해 에드워드 리, 김시연, 이문정, 임태훈, 우정욱, 박준우 등이 매대 운영과 물품 후원으로 함께한다.
또한, 강민철 레스토랑, 기와강, 레스토랑 산, 모수, 산로, 삼원가든, 소수헌, 스시소우, 쥬온, 온지음, 이타닉 가든 등 국내 주요 레스토랑들도 식사권 후원에 참여한다.
이 장면이 의미 있는 이유는 전통문화가 더 이상 박물관과 유물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미식과 라이프스타일 감각 속에서도 해석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통의 ‘식’ 문화는 지금도 살아 있는 감각이어야 하며, 그것을 현대의 셰프와 레스토랑이 어떻게 다시 이어갈 수 있는지가 결국 전통의 미래를 결정하기도 한다.
갤러리 존 역시 이 바자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PKM 갤러리와의 협업으로 구현모, 백현진, 샘바이펜, 이명진, 정현 등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를 넘어 문화적 경험의 밀도를 높이려는 구성으로 읽힌다.
전통문화 계승을 위한 바자에 동시대 예술의 감각을 끌어들인 것은, 전통과 현대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전통은 현대적 감각과 만날 때 더 오래 살아남고, 현대는 전통과 만날 때 더 깊어진다.
행사 현장에서 진행되는 옥션과 럭키드로(Lucky Draw), 기부 이벤트 역시 단순한 즐길 거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일부 연예인의 애장품과 셰프들의 식사권을 두고 진행되는 옥션은 참여의 재미를 높이고, 응모권 추첨과 기부 이벤트는 관람객을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기부의 주체로 끌어들인다.
이처럼 바자는 소비와 후원, 취향과 참여가 분리되지 않고 한 자리에서 함께 작동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오늘날 공익 행사가 더 오래 살아남으려면 바로 이런 방식의 설계가 필요하다. 도와 달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고 즐거운 경험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점 브랜드 구성을 보면 이번 행사의 방향은 더 선명해진다. 식품과 주류, 패션과 잡화, 키즈웨어와 리빙, 뷰티와 코스메틱, 공예와 디자인, 카페와 베이커리, 친환경·사회적기업 제품 등 약 150개 브랜드가 참여한다.
이는 바자가 전통문화 후원이라는 공익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오늘의 생활과 소비 감각을 충분히 품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이번 행사는 전통문화가 우리의 일상과 멀리 떨어진 높은 가치가 아니라, 지금 내가 고르는 물건과 취향, 생활 방식 속에서도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입장권 가격이 1만 원으로 책정된 것도 상징적이다. 이는 단지 행사 입장료가 아니라, 현장을 찾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미 기부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바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후원은 시작된다.
이 구조는 관람객을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이어가는 사람’으로 위치 짓는다. 전통문화의 계승이 전문가와 재단만의 몫이 아니라, 현장을 찾는 시민 한 사람의 선택 속에서도 이루어진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셈이다.
아름지기 홍정현 이사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분이 재단의 취지에 공감하며 함께해주고 있다”라며 “현장을 찾는 모든 분이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중요한 주체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전통은 특정 기관이 혼자 지킬 수 없다.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의미를 알고, 자기 방식으로 참여할 때 비로소 살아남는다.
누군가는 물건을 기부하고, 누군가는 브랜드로 후원하며, 누군가는 입장권을 사고, 누군가는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식으로 저마다의 참여 방식이 쌓일 때 전통문화는 ‘좋은 말’이 아니라 ‘유지되는 현실’이 된다.
2001년 설립된 아름지기는 그동안 전통의 현대화,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 환경 개선,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위한 교육과 연구를 지속해온 비영리 단체다. 이 바자는 그런 활동의 연장선 위에 있다.
한 번의 행사로 전통문화가 지켜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자리들이 쌓일수록 전통은 더 많은 사람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전통은 더 이상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의 삶과 미래의 감각을 함께 만들어 가는 살아 있는 자산이 된다.
전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오늘 무엇을 사고 무엇에 공감하며 무엇을 후원하는지 속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셰프와 연예인, 브랜드와 시민이 함께 모인 이번 바자는 그래서 단순한 자선 행사가 아니라, 전통문화의 미래를 위한 동시대적 연대의 장이라고 할 만하다. 좋은 것을 이어간다는 말은 결국, 지금 내가 손을 보태는 일에서 시작된다.

